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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 도시 이야기 열두 번째 이야기로 독일 도시 중 작은 도시인 코블렌츠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코블렌츠는 독일 중부 지역 라인란트팔츠 주에 있는 작은 도십니다.
이 도시에는 두개의 강이 흐르는데 라인 강과 모젤 강의 이 도시에서 만나서 갈라져 흐릅니다. 
코블렌츠 도시 자체는 작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입니다.
이미 11세기에 모젤 강 부분에 요새가 생겼습니다.
과거 로마 제국 시절부터 발전한 오래된 도시입니다,
그럼 이 작은 도시 코블렌츠의 역사부터 알아보겠습니다


1. 코블렌츠 도시 역사

 

 BC 2세기 때 로마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가 카스텔 룸 아푸 드콘 플루엔 테스(Castellum apud Confluentes)라는 이름으로 이 지역에 도시가 지어졌습니다.
1018년 이후 트리어 대주교가 이 도시 코블렌츠를 통치하면서18세기 말까지 트리어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때부터 17세기까지 선제후의 소재지가 되었습니다
또한 코블렌츠는 신성로마제국황제 콘라트 2세가 이 코블렌츠에서 선출된 역사적인 도시입니다..

1216에 독일기사단은  트리에르 대주교 테오데리히 폰 비트의 초청을 받아 코블렌츠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일기사단은 도이취 에크에 있는 성 카스토르 교회 근처에서 법을 집행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 카스트로 교회는 2002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교회입니다. 
나중에 기사단이 가지고 있던 영토를 프로이센 왕국이 점령했습니다.

30년 전쟁이 일어나면서 코블렌츠는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1786년 트리에르의 마지막 선제후이자 대주교인 클레멘스 벤 세스 라우스는 에렌브라이트슈타인 이 건축물을 바로크 스타일의 궁전으로 개조하여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 빈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코블렌츠는 프로이센 왕국에 편입되었습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코블렌츠는 독일 국방군 B군의 주둔지였습니다.
이러한 관계로 제2차 세계대전때 연합군이 코블렌츠를 폭격해서 도시에 많은 건축물들이 파괴되었고 그 피해 또한 심했습니다.
그러다 그 이후 코블렌츠에 있던 건축물은 재건축되어 복구가 되었습니다

그럼 이 역사적인 도시 코블렌츠에는 어떠한 명소가 있고 어떤 문화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2. 코블렌츠 도시의 관광 및 볼거리, 문화


코블렌츠에는 도이치 에케(Deutsches Ecke)라는 랜드마크가 있습니다.
모젤강과 라인강이 만나는 곳 독일 모퉁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의미처럼 모젤강과 라인강이 만나는 위치에서 독일 가장 모퉁이에 이 기념비가 있습니다.
이 기념비는 1888년 빌헬름 2세 황제가 민족정신을 국민들에게 교육시키기 위해 독일제국의 창립자를 기리는 키프호이저 기념비와 빌헬름 1세 기념비를 설립하기로 해서 만들어졌습니다.

키프호이저 기념비는 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리히 1세를 상징하는 건축물입니다. 
빌헬름 2세가 1897년에 도이치 에케 이 장소에 브루노 슈미츠가 설계한 37m 높이의 빌헬름 1세 기념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 통독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동상 재건립 문제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코블렌츠의 한 신문 발행인 베르너 타이젠이 재건에 대한 비용 부담을 기증하면서 재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뒤셀도르프 조각가 라이몬트 키틀이 제작한 복제품 동상이 여기에 세워졌습니다. 

코블렌츠의 방어를 위한 성곽이 도시 서쪽 언덕 위에 있습니다
여기 성곽과 라인강 반대편 강둑에 있는 에렌브라이트슈타인 성(城)이 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코블렌츠 시내에는 트리에르의 마지막 선제후가 1786년 지은 코블렌츠 선제후 궁전이 있습니다.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독일의 가장 끝자락 모퉁이에 있는 코블렌츠 방문해 보시는 것 어떨까요?

그럼 저는 다음번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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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 도시 이야기 여섯 번째 이야기로 독일에 있는 도시 하이델베르크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하이델베르크는 독일 라인 강에서 뻗어 나온 네카르 강변에 위치한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있는 도시입니다. 
하이델베르크에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하이델베르크 고성이 있습니다.
이미 황태자의 사랑이란 영화로 하이델베르크의 고성과 구시가지는 유명합니다.
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로 유명한데요. 이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어서 대학도시로 불리고 있습니다. 또 관광지로 잘 알려진 관광도시이기도 합니다. 
인구는 16만 정도 아주 작은 도시이지만 도시 자체가 대학도시여서 주로 대학생, 교수 등 학계 분야 인구 비중이 높습니다. 
하이델베르크는 인구가 작은 도시이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많습니다.
그럼 하이델베르크가 가지고 있는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이델베르크 역사

 

하이델베르크에서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조상으로 추측되는 하이델베르크 조상 유골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B.C. 5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켈트족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유골의 발견으로 하이델베르크 도시에 처음으로 살았던 조상은 신생대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각각으로 나뉘어지고 있습니다.
아마 200만~60만년 전 사이로 추정됩니다. 
하이델베르크는 B.C. 1세기 때 이서 지방이 로마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나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하이델베르크 일대에 로마군의 주둔지로 세웠습니다.
그러다가 로마 제국이 쇠퇴한 3세기 이후 이에 하이델베르크는 다시 게르만족의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 하이델베르크라는 지명은 언제 처음 불리어졌을까요?


하이델베르크라는 이름이 처음 알려진 것은 중세시대 12세기 때였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이 지역에 사람들이 살고는 있었지만 역사서에는 베르크하임(Bergheim)이라는 지명으로 불리었습니다.
그러다가 가톨릭 수도원들이 이 일대에 만들어지고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1386년에는 팔츠 선제후였던 루프레히트 1세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를 짓기 시작하면서 이 도시는 빠르게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겪으면서 그 당시 독일 문화권 지성인 단체의 총수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지만 17~18세기 끊임없는 전란으로 공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1622년에는 30년 전쟁 중에 두어 달 동안 틸리 백작이 이끄는 가톨릭계 군사들의 포위전으로 하이델베르크는 점령당해서 일시적으로 하이델베르크는 팔츠가 아니라 바이에른의 통치권 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는 비블리오테카 팔라티나(Bibliotheca Palatina)라고 불리는 당대 최고의 도서관이 건립되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에는 알프스 이북에서 르네상스 시기 발간된 수많은 서적들을 보관하 어 있었으나, 틸리 백작이 이 문서들을 빼앗고 바티칸으로 가져갔습니다. 
1634년 스웨덴군이 하이델베르크를 침공하자 가톨릭 측은 하이델베르크를 재탈환하기 위한 공세를 계획했으나 같은 가톨릭 국가이면서도 프랑스가 배신을 하면서 스웨덴군을 지원하면서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하이델베르크 도시는 다시 팔츠 선제후의 통치권으로 돌아왔지만,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전쟁이 발생되었습니다. 
프랑스 왕 루이 14세가 팔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하면 9년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팔츠 선제후였던 카를 루트비히 1세는 자신의 딸을 루이 14세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작에게 결혼시켰습니다.
그런데 팔츠 비텔스바흐 가문 지메른 분가의 대가 끊기자 루이 14세가 이 혼인을 근거로 팔츠가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했습니다.
프랑스의 위협으로 팔츠 선제후 요한 빌헬름은 뒤셀도르프로 피난했고, 1693년 하이델베르크는 결국 프랑스 군에 의해 점령당하고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한편 수많은 전쟁으로 심신에 지친 하이델베르크를 포함한 팔츠 지역 일대 주민은 영국을 거쳐 신대륙으로 이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들이 바로 오늘날 미국의 펜실베니아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일대를 개척한 선구자입니다.

그 이후 1803년 하이델베르크는 바덴 대공국의 영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위력을 힘입어 19세기 전반기 내내 하이델베르크는 자유주의의 천국과도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1848년 혁명 당시에는 혁명세력의 중심 역할을 맡기도 했지만 혁명이 결국 무너지면서 프로이센 군이 하이델베르크를 잠깐 점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특이점이 있는데 1815년 혁명 이념을 없애기로 결의하면서 프로이센 - 오스트리아 - 러시아 사이에서 체결된 신성 동맹이 여기 하이델베르크 도시에서 맺어졌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아주 작은 소규모 도시여서 다른 제국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는데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위력으로 하이델베르크는 독일의 중요한 학문의 중심지 중 하나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치 독일 시기는 하이델베르크에게 있어 암흑시대였습니다. 
나치가 집권한 이후 뉘른베르크 법에 따라 많은 비 아리아(주로 유대인) 출신 사람들은 해고당했으며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나치 당원과 슈츠 슈 타펠을 위한 시설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도시는 다른 대도시처럼 크지가 않아 산업이나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2차 대전 중에는 연합국의 폭격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미군이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를 막사나 포로 수용소로 쓰려고 일부러 폭격을 안 했다는 주장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질 경우 이곳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 도시 하이델베르크를 남겨 두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1945년 3월 30일에 미군이 하이델베르크를 점령했습니다.
그 이후 2011년까지 하이델베르크는 주독미군의 거점 중 하나였습니다. 
미군은 2011년 이후로 2013년까지 2년에 걸쳐 비스바덴으로 미군기지를 옮겼습니다.


3. 하이델베르크의 볼거리와 문화


하이델베르크 도시는 뮤지컬 황태자의 첫사랑 'The Student Prince' 배경이 된 장소입니다.
황태자의 첫사랑은 독일 어느 조그마한 성에서 이 도시로 유학 온 왕자가 현지인 바걸과 사랑에 빠진다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독일 연극으로도 각색되고 1924년 미국에서 제일 처음 상연되었습니다.
황태자의 첫사랑이라는 영화로는 1954년 만들어졌습니다. 

하이델베르크 도시의 명소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이델베르크 고성, Heidelberg old bridge, 철학자의 길, 하이델베르크 구시지지 메인 스트리트, Brass Monkey Statue, 학생 감옥, 넥카강, 대학광장 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이델베르크는 대도시는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많은 스토리를 담고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그럼 오늘은 독일 학문의 중심지 하이델베르크에 대해 여기까지 말씀드리고 다음 번 도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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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랑잠언니입니다.

오늘 유럽 도시 이야기 첫 번째로 먼저 프랑크푸르트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시 이야기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헤센 주의 수도 도시입니다.
공식 명칭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 또는 Frankfurt a.M.)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에는 프랑크푸르트 도시가 두 군데라는 것 혹시 알고 계셨나요?

또 다른 도시의 프랑크푸르트는 동독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동독에 있는 프랑크푸르트는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데르라고 부르고 헤센주에 있는 프랑크푸르트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도시의 인구는 76만여 명으로 독일에서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쾰른 다음이지만, 프랑크푸르트 인근 주변 도시에 인구까지 합하면 580만 명이 넘어 독일에서 세 번째로 많은 독일 대도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는 미국의 뉴욕처럼 유럽의 금융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 시내에는 초고층 빌딩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인구비중을 살펴보면 외국인 비율이 높은 편입니다.
프랑크푸르트 인구의 약 30퍼센트가량은 외국인입니다.
독일 대도시 중에서는 가장 높습니다.

그럼 프랑크푸르트 도시의 역사를 살펴볼까요?


2. 프랑크푸르트 도시의 역사

프랑크푸르트 도시는 프랑크 왕국 시대 때 팔츠가 존재하는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독일 왕국 시대에는 수도였기도 했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 시대에는 황제 선거가 열리는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독일 왕국이나 신성로마제국에서도 '수도'라는 공식 명칭이 법적으로 정해지지 않아서 수도의 의미가 크게 크지 않았습니다.
프랑크푸르트는 빈 회의 이후에는 독일 연방의 4개 자유 도시 중 하나였는데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때 프로이센에 점령되어 헤센-나사우 중에 강제로 통합되었습니다.

그 이후 1945년 독일이 세계대전에서 패전된 후 프랑크푸르트는 완전 폐허가 되었습니다.

패전 후 프랑크푸르트는 1945년 미국 점령지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그 뒤 냉전시대에서 프랑크푸르트는 세계 제일의 전략적 요충지로 되었습니다.

독일이 분단되어 서독, 동독으로 나뉘면서 프랑크푸르트는 미군들이 집결된 군사적 요충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통일이 되어 프랑크푸르트는 군사도시라는 이미지보다 분단 시절의 아픔을 담은 추억의 장소로 변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는 통독이 된 후 1990년 독일 재통일 당시에도 프로이센, 독일 제국과 나치 독일의 수도였던 베를린 대신 프랑크푸르트를 통일된 독일의 수도로 지정하자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가 수도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독일의 뿌리는 프로이센이기 때문이며 베를린에 대한 상징성이 너무 커서 그것을 배제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일의 수도는 프로이센의 중심지 베를린으로 정하고, 다른 도시들 즉, 뮌헨,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에어프루트, 본, 함부르크 등)에 주요 기능들을 분산시키기로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베를린은 수도로 의미만 두고 지방분권연방제를 유지한다는 거죠.

그럼 프랑크푸르트에 유명한 인물 중 누가 있을까요?
프랑크푸르트 출신 인물로 너무나 유명한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차두리선수도 프랑크푸르트 태생입니다.

2. 교육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서 금융, 경제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학문의 중심지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교육열도 그만큼 다른 도시에 비해 높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사회학으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발생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도서박람회도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됩니다. 독일 국립도서관도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이름을 딴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교도 프랑크푸르트에 있습니다.

노벨수상자가 많이 배출된 막스 플랑크 연구소 5군데 즉, 막스플랑크 뇌 연구소, 막스플랑크 경험적 미학 연구소, 막스플랑크 유럽 법학 연구소, 막스플랑크 생물물리학 연구소, 막스플랑크 신경유전학 연구소가 프랑크푸르트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독일 보수주의 대표 언론사이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언론사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본거지이기도 합니다.

3. 교통

프랑크푸르트는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내 최대 교통의 요충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은 시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밖에 다른 역으로는 프랑크푸르트 동역과 프랑크푸르트 남역,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 역을 말할 수 있고요.

프랑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은 국제적으로 큰 공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공항은 유럽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9개 노선의 지하철도 프랑크푸르트에선 운행되고 있습니다.

그럼 프랑크푸르트에서 여행할 수 있는 관광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4. 관광

프랑크푸르트 구시가지(Altstadt)에는 80년대 초 복원한 중세, 르네상스 풍의 시청사, 그 주위의 유서 깊은 저택들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 관광지로 유명합니다.
프랑크푸르트 구시가지에는 괴테 생가도 있습니다.

슈테델 미술관을 꼽을 수 있는데 여기에는 중세부터 현대 미술까지의 방대한 컬렉션이 있어 볼거리가 많습니다.
그런데 입장료가 비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 젠켄베르크 자연사박물관(Naturmuseum Senckenberg)도 독일에서는 유명합니다.
여기서 공룡 화석 즉, 티라노사우루스, 디플로도쿠스, 이구아노돈, 오비랍토르, 스테고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에우오플로케팔루스, 파라사우롤로푸스, 플라테오사우루스, 콤프소그나투스, 아르카이옵테릭스 등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전경을 보고 싶다면 마인 타워(Main Tower)를 방문하시면 됩니다. 입장료를 내고 루프탑에서 프랑크푸르트 전경을 볼 수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는 쇼핑의 도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시내 중앙의 바로크풍의 건물인 Hauptwache(중앙 경비초소)를 중심으로 해서 괴테 거리로 가면 루이뷔통, 지미추, 프라다, 에르메스 등의 명품샵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근방에 백화점, H&M, ZARA, 풋락커, 에스프리처럼 샵들이 있어서 쇼핑하기에 편리합니다.
관광 외에도 프랑크푸르트는 세계 최대 박람회 도시이기도 합니다.

다음엔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되고 있는 박람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5. 박람회


프랑크푸르트 전시장 즉 메세(Messe)라고 하는데 국제적으로 프랑크푸르트 박람회는 유명합니다.
메세 프랑크푸르트(프랑크푸르트 전시장)에서는 1년 내내 여러 분야의 박람회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시회와 프랑크푸르트 모터쇼가 국제적으로 유명합니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경우 매년 10월에 5일간 개최되는 세계 최대의 도서전시회입니다.
22년의 경우 10월19일에서 23일까지 프랑크푸르트 메세에서 진행됩니다.
22년의 경우10월 19일(수) - 23일(일)에 열립니다.

그리고 최근에 자동차 부품 박람회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를 여행할 때 박람회 기간에는 숙박비가 다른 때보다 몇 배 더 비싼 이 기간을 피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프랑크푸르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도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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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랑잠언니입니다.

 

여러분들은 아주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무엇을 준비하시나요?

혹시 여행 가셔서 그 도시의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은 하시는지요?

보통 해외여행가면 가이드가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그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냥 피곤하다는 느낌.

저만 그럴까요?

유럽여행: 독일 에슈보른


저는 다음달 초부터 두어 달 유럽에 지낼 계획인데요.
그래서 다음달 유럽여행을 앞두고 사전에 여행 일정과 방문한 도시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자 자료를 준비해봤어요.
모처럼 가는 여행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오고 싶어 가기 전에 미리 사전조사 차원에서 제가 방문하는 도시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예전에 여행했던 것처럼 아무런 내용도 없이 사진 몇장만 내 핸드폰 속에 담아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언젠가부터 들었어요.

그래서 미리 공부를 하고 도시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먼저 제 일정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며칠 보낸 뒤 이탈리아 베네치아, 베로나, 피렌체, 라스페찌아, 볼로냐를 방문 후 다시 베네치아 공항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들어오는 일정으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저는 이때까지 혼자서 여행도 즐기고 여행도 잘하는 편이지만 사전에 미리 공부해서 가본적은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사실 유럽에 여러 번 갔다 왔어도 방문했던 도시의 사진만 머릿속에 남아있고 그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머릿속에 없어서 늘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그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먼저 공부해보고 여행가서 직접 눈으로 담으려 합니다.

코로나19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이어서 약간 두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두려움보다 설렘이 크기에 여행을 떠납니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글로 올릴 계획이니 기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그럼 다음 번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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