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 도시 이야기 열다섯 번째 이야기로 이탈리아 피렌체(Florence, Firenze)에서 가볼 만한 곳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피렌체는 영문명으로 Florence, Firenze로 표기됩니다.


이탈리아 피렌체는 르네상스 시대의 본고장입니다.
오늘은 피렌체를 여행할 때 필요한 여행 준비와 둘러보아야 할 관광명소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가장 먼저 피렌체를 여행을 하기 전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여행준비


먼저 가장 중요한 코로나 19 관련 입국 그리고 출국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이탈리아 입국 시와 한국으로 귀국 시 입국 가능 여부, 백신 필수 여부를 알아보겠습니다.

이탈리아를 입국할 경우 가능합니다.
백신은 필수가 아닙니다.

또한 여행지에서 격리도 면제됩니다.

 

한국으로 귀국할 경우 백신 접종자, 미접종자 상관없이 격리가 면제됩니다.


비자는 무비자로 최대 90일 여행할 수 있습니다.
전압은 220 V 이어서 별도의 변압기가 필요 없습니다.
시차는 서머타임 적용시 한국과 7시간의 시차가 있고 11월부터 2월까지는 8시간 시차가 있습니다.

그럼 피렌쳉에서 꼭 봐야 할 관광명소 알아보겠습니다.

 


2. 피렌체 관광명소 및 가볼 만한 곳:

1. 우피치 미술관 (Gallerie Degli Uffizi)
우피치 미술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입니다. (입장료 20유로)

2. 피렌체 대성당 (Duomo - 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아름다운 색상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성당 외관이 있으며 이를 아름다운 ‘꽃의 성모 마리아’라고 합니다.

3. 베키오 다리 (Ponte Vecchio): 아르노강에 있는 다리 중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다리 위에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4. 조토의 종탑 (Campanile di Giotto): 좁은 계단을 따라 82m에 달하는 전망대에 오르면 시가지 전망을 볼 수 있습니다.
 
5. 베키오 궁전 (Palazzo Vecchio):
13세기부터 지금까지 피렌체의 궁전이며 현재는 피렌체 시청에서 일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6. 산타 크로체 성당 (Basilica of Santa Croce)
19세기에 새로 지어진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미켈란젤로와 갈릴레오의 무덤이 있습니다.

7.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Church of Santa Maria Novella)
   15세기 도미니크 교회에 고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8. 미켈란젤로 광장 (Piazzale Michelangelo): 피렌체 랜드마크
미켈란제로의 복제된 다비드상이 있지만 도시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9. 피렌체 중앙 시장 (Mercato Centrale)
   19세부터 철제와 유리로 지어진 농산물 시장입니다.

10. 피렌체 역사 지구 (Centro Storico) 피렌체 도시의 유적 산책로입니다.

그럼 피렌체를 여행할 때 대중교통은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3. 피렌체 도심 대중교통 

 

피렌체는 산책하기 도보하기 좋은 도시입니다.
그러나 걷다가 지칠 경우 대중교통 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버스는 1회 1.5 유로 미리 사두어야만 하며 버스에 승차해서 탈 경우 2.5유로입니다.
1회권을 10회 일괄적으로 구매할 경우 14유로입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가볼만한 곳을 말씀드렸고 다음번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반응형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 도시 이야기 열세 번째 이야기로 독일 도시 중 통일되기 전 서독의 수도 본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본 도시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도시이야기: 독일 본


1. 도시 역사


통일 되기 전 서도의 수도였던 본은 라인 강변 인근에 있는 도시입니다.
 “본”이란 이름은 켈트족의 언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BC 63년 전 로마 황제 Augustus가 Castra Bonnensia에 도시를 만들면서 그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4세기 때 프랭크족이 이 도시를 파괴했습니다.
이로 인해 로마인들이 이 도시를 버리다시피 떠났다가 중세기 초에 다시 도시를 다시 복구하여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9세기에 노르만족이 다시 본을 침략합니다.
지금의 본은 260년경 그리스도교가 여기에서 세력을 가졌습니다.
특히 테베 군단(Theban Legion)과 관련된 성 Cassius와 성 Florentius에서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경외심이 컸습니다. 
이 성당은 400년경에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St. Cassius 수도원의 중심역할을 해왔습니다.
중세도시는 이 당시 이 성당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습니다. 
804년경에 도시 성곽은 이렇게 해서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도시를 9세기 때 Civitas Verona라고 불렀습니다. 
1145년에 지금의 주교좌성당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건물의 특징은 로마식과 고딕식 건축양식을 혼합한 바실리카 형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이 건물 안에는 1169년 초대교회 시절 때의 순교자들의 유골들이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성 외부에는 물건을 파는 상거래 시장이 형성되었는데, 1244년 대주교 Conrad von Hochstaden가 이 지역을 통치했습니다.

본은 13세기 때 쾰른 대주교들이 여름에 거주할 수 있는 거주도시로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본은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17세기 때는 문화와 음악의 중심지 즉,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 시대 때 두 대주교 Hermann von Wied와 Gebhard Truchsess von Walburg가 타락의 길을 가면서 이 지역이 가톨릭으로부터 탈바꿈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Ferdinand과 그의 후계자들이 다시 본을 가톨릭 도시로 만들고자 시도했습니다.
이 시기에 예수회(1590), 카푸친회(1618), 혁신 원시 회칙파 프란치스꼬회(Recollects, 1624), 카푸친회 수녀회(1629), Welsh 수녀회(1664) 등을 본으로 이주하게끔 했습니다.
그때 Graurheindorf에는 시 또 회(Cistercians)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8세기 말에 프랑스가 이 지역 본을 침공하면서 모든 수도원과 수녀원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1949년 이후 독일이 동서독으로 분단되고 나서 통독되기 전까지 본은 독일의 수도였습니다. 

그럼 통일 전 서독의 수도 본에는 어떠한 명소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2. 관광명소와 볼거리

본에서는 왕궁과 이에 딸린 Coblenz 탑이 유명한 관광명소입니다.
또 본에서 유명한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전주의 대표 음악가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생가가 여기 본에 있습니다.
또 본 대학교를 명소로 말할 수 있습니다.
본 대학교는 1777년 Max Friedrich 왕자가 쾰른귀족의 아카데미로 시작하여 생겼지만 1768년 황제가 승인하여 대학교가 되었습니다.
 Köln 대학을 경쟁대학으로 볼 수 있는데 본대학과 쾰른 대학이 라인 강변 지역에서 계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지금까지 예전 서독의 수도 본에 대해서 알아봤고 저는 다음번 도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반응형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 도시 이야기 열두 번째 이야기로 독일 도시 중 작은 도시인 코블렌츠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코블렌츠는 독일 중부 지역 라인란트팔츠 주에 있는 작은 도십니다.
이 도시에는 두개의 강이 흐르는데 라인 강과 모젤 강의 이 도시에서 만나서 갈라져 흐릅니다. 
코블렌츠 도시 자체는 작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입니다.
이미 11세기에 모젤 강 부분에 요새가 생겼습니다.
과거 로마 제국 시절부터 발전한 오래된 도시입니다,
그럼 이 작은 도시 코블렌츠의 역사부터 알아보겠습니다


1. 코블렌츠 도시 역사

 

 BC 2세기 때 로마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가 카스텔 룸 아푸 드콘 플루엔 테스(Castellum apud Confluentes)라는 이름으로 이 지역에 도시가 지어졌습니다.
1018년 이후 트리어 대주교가 이 도시 코블렌츠를 통치하면서18세기 말까지 트리어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때부터 17세기까지 선제후의 소재지가 되었습니다
또한 코블렌츠는 신성로마제국황제 콘라트 2세가 이 코블렌츠에서 선출된 역사적인 도시입니다..

1216에 독일기사단은  트리에르 대주교 테오데리히 폰 비트의 초청을 받아 코블렌츠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일기사단은 도이취 에크에 있는 성 카스토르 교회 근처에서 법을 집행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 카스트로 교회는 2002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교회입니다. 
나중에 기사단이 가지고 있던 영토를 프로이센 왕국이 점령했습니다.

30년 전쟁이 일어나면서 코블렌츠는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1786년 트리에르의 마지막 선제후이자 대주교인 클레멘스 벤 세스 라우스는 에렌브라이트슈타인 이 건축물을 바로크 스타일의 궁전으로 개조하여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 빈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코블렌츠는 프로이센 왕국에 편입되었습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코블렌츠는 독일 국방군 B군의 주둔지였습니다.
이러한 관계로 제2차 세계대전때 연합군이 코블렌츠를 폭격해서 도시에 많은 건축물들이 파괴되었고 그 피해 또한 심했습니다.
그러다 그 이후 코블렌츠에 있던 건축물은 재건축되어 복구가 되었습니다

그럼 이 역사적인 도시 코블렌츠에는 어떠한 명소가 있고 어떤 문화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2. 코블렌츠 도시의 관광 및 볼거리, 문화


코블렌츠에는 도이치 에케(Deutsches Ecke)라는 랜드마크가 있습니다.
모젤강과 라인강이 만나는 곳 독일 모퉁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의미처럼 모젤강과 라인강이 만나는 위치에서 독일 가장 모퉁이에 이 기념비가 있습니다.
이 기념비는 1888년 빌헬름 2세 황제가 민족정신을 국민들에게 교육시키기 위해 독일제국의 창립자를 기리는 키프호이저 기념비와 빌헬름 1세 기념비를 설립하기로 해서 만들어졌습니다.

키프호이저 기념비는 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리히 1세를 상징하는 건축물입니다. 
빌헬름 2세가 1897년에 도이치 에케 이 장소에 브루노 슈미츠가 설계한 37m 높이의 빌헬름 1세 기념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 통독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동상 재건립 문제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코블렌츠의 한 신문 발행인 베르너 타이젠이 재건에 대한 비용 부담을 기증하면서 재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뒤셀도르프 조각가 라이몬트 키틀이 제작한 복제품 동상이 여기에 세워졌습니다. 

코블렌츠의 방어를 위한 성곽이 도시 서쪽 언덕 위에 있습니다
여기 성곽과 라인강 반대편 강둑에 있는 에렌브라이트슈타인 성(城)이 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코블렌츠 시내에는 트리에르의 마지막 선제후가 1786년 지은 코블렌츠 선제후 궁전이 있습니다.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독일의 가장 끝자락 모퉁이에 있는 코블렌츠 방문해 보시는 것 어떨까요?

그럼 저는 다음번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반응형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 도시 이야기 아홉 번째 이야기로 예전 동독 지역에 있던 포츠담이란 작은 도시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포츠담은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25km 정도 남서쪽으로 떨어져 있고 인구 20만 명도 안 되는 작은 도시입니다.
하펠 강 주변에 있는 도시입니다.
포츠담은 독일 브란덴부르크주의 행정 수도이기도 합니다. 
포츠담은 호수와 강, 숲으로 둘러 쌓인 작은 도시입니다.
포츠담은 작은 도시이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도시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포츠담 회담의 장소가 이 도시에서 나왔습니다.

그럼 이 작은 도시 포츠담 역사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1. 포츠담 도시의 역사

 

포츠담은 주변이 숲과 호수로 둘러 쌓여 있어서10세기부터 이미 별장지와 같은 도시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이후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호엔촐레른 왕가가 포츠담에 여름 별장지로 사용했을 정도로 포츠담에는 화려하고 예쁜 궁전들이 있는 역사적인 도시이자 휴양지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포츠담은 빌헬름 2세때부터 브란덴부르크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황제의 도시라고도 불리었습니다,
지금은 세 개의 대학교과 30개 이상의 연구기관이 포츠담에 있어 포츠담을 산업의 도시라고 부릅니다.

한때 포츠담은17세기 이전까지 인구가 다른 도시에 비해 별로 없어서 그냥 작은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1685년에 브란덴부르크 성에 있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황제가 포츠담 도시에서 포츠담 칙령을 반포하여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쫓겨난 위그노 민족들이 포츠담으로 이주하면서 포츠담은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18세기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 포츠담에 화려한 상수시 궁전과 별궁을 짓게 되면서 프로이센 왕가가 포츠담에 살게 되면서 포츠담은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815년 프로이센 왕국 브란덴부르크 주의 수도였지만 1827~1843년 사이와 1918년~1945년 때에는 베를린이 수도가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떼 옆 도시 베를린은 연합군에 의해 많이 파괴가 되었지만 포츠담의 경우 그리 심하게 침략을 받지 않아 훼손이 적어서 어느 정도는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는 포츠담에 있는 체칠리엔호프 궁전에서 그 유명한 포츠담 회담이 열리었습니다. 
그 이후 동독 정권이 들어서면서 동독 통치권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통일 이후 포츠담은 새롭게 조성된 브란덴부르크 주의 행정수도가 다시 되었습니다.
지금 현재까지 포츠담은 도시의 초기 외관을 복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포츠담에서 볼거리 여행지를 알아보겠습니다.

2. 포츠담 볼거리와 여행지

포츠담에는 화려한 상수시 궁전이 유명합니다.
상수시 궁전이 안에 있는 공원과 여러 별궁도 꼭 들려야 하는 명소입니다.
또한 포츠담 대학을 마주보고 있는 궁전이 있는데 이 궁전에서 포츠담 선언이 개최되었는 이 궁전의 이름이 체칠리엔호프 궁전입니다.
체칠리엔호프 궁전 근처에도 대리석으로 둘러 쌓인 대리석 궁전도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옛 동독에 있던 화려한 작은 도시 포츠담에 대해 말씀드렸고 저는 다음 도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랑잠언니였습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